기원 원년경 이집트의 상인이 겨울은 동북쪽에서 불고 여름은 서남쪽에서 부는 인도양의 계절풍 히파로스의 바람을 발견하였다. 이 히파로스의 계절풍이 주기적으로 정반대 방향으로 바람의 방향이 변하길 반복한다는 것을 발견하고, 로마 상인들도 이집트를 기지로 홍해와 인도양 무역에 나섰다. 이들은 대량의 금화를 가지고 비단 면직물을 찾아 남인도와 중국등 동아시아로 들어가서 활발한 무역활동을 통하여 교역이익을 통하여 부를 창출하였다.
이 지역이 어딘고 하니, 아프리카 해적이 출몰하는 지역으로 아직 문제시되고 있는 아덴만을 경유하는 좁은 해역을 말하며, 인도양과 연결되어 있다. 홍해 끝에 위치한 이집트(이 당시 로마의 속국이었음. 이집트 바로 위 지중해 바다에 시칠리아섬이 있고, 그 위 지중해와 마주한 반도 끝에 로마가 있음)에서 시작하여, 홍해를 지나서 인도양으로 들어가서 인도 중국 동남아시아등으로, 서남쪽에서 불어와 동북쪽으로 향하는 히파로스의 바람을 타고 여름에 항해를 시작하여, 금으로 비단 향신료 면직물을 사서, 겨울에 다시 동북쪽에서 불어와 서남쪽으로 향하는 히파로스의 바람을 타고 인도양을 지나서 아덴만을 경유하여 홍해 끝에 도달하여, 육로로(1970년대 이집트가 수예즈 운하를 건설하여 지금은 홍해와 지중해가 운하로 연결됨) 지중해와 연결된 이집트 항구도시 알렉산드리아(마케도니아 알렉산더 왕이 그가 멸망시킨 페르시아 제도를 본 받아서 만든 도시. 아이러니하게 알랙산도로스 왕은 그 가 멸망시킨 페르시아의 제도와 문물을 숭상하였다 함.그럴 것을 왜 멸망시키남. 친구하지. 그래서 역사의 아이러니라함.)에 도착하여, 여장을 풀고 다시 지중해를 통하여 로마에 도달하여 로마인에게 비단과 면직물 향신료 등을 팔아서 부를 만들수 있었다.
로마인들의 로마에서 홍해를 거쳐서 인도양을 지나서 중국으로 뱃길로 국제무역을 가능하게 만든 것이 바로 주기적으로 바람의 방향이 정반대로 부는 계절풍 히파로스의 바람을 발견하였기 때문이다.
로아인들의 히파로스의 바람을 탄 뱃길로 대항해를 하던 시기를 1차 대항해시대라 하며, 바로 이 뱃길이 "뱃사람 신밧드의 모험" 소설속 신밧드가 모험한 항해길이다. 기원 원년이니 예수님이 탄생하던 무렵이고, 유럽은 카이사르가 죽고 옥타비아누스가 카이사르 사후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 연합군을 물리치고 정치적 안정을 취하던 시기가 지나고, 2대 황제인 티베리우스 황제가 80년 집권한 이후, 폭군 칼리쿨라 황제가 재위 5년만에 암살당하고 그의 숙부였던 클라우디우스 황제가 통치하다, 황제의 애인이며 옥타비아누스의 손녀인 아그리피나의 아들이 바로 네로황제이고, 바로 이시기가 히파로스의 바람을 발견한지 50년정도 지나서 대항해시대가 본격화되던 시기였다.
네로황제가 기원후 54년부터 68년 재위기간이기에 이 시기전후 약 50년전에 로마인들이 히파로스의 바람을 발견하고, 이후 네로황제시대를 거치면서 본격적인 대항해시대가 열렸다. 이 시기는 중국은 진시황이 죽고 불과 15년만에 망한 진나라이후 생긴 한나라가 망하고 한고조 유방의 후손 유선(광무제)이 후한을 세워서 통치하던 시기였고, 한국은 고조선이 망하고 한사군이 한반도를 통치하던 시기이거나, 막 고구려 신라 백제가 발원하던 시기와 겹치거나 그 수십년전이었다. 일본은 이 시기에 아직 통일된 국가가 없는 부족단위였다.
바로 이러한 시기에 로마인들은 히파로스의 바람을 타고 대항해의 모험을 하면서 국제무역을 통하여 부를 창출한 것이다.